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이현중(만 25세, 202cm)은 2026년 10월 NBA 포틀랜드 트레일블레이저스와 'Exhibit 10' 계약을 체결하며 다시 한 번 NBA 도전에 나섰습니다. 최저 연봉 수준의 1년 비보장 계약이지만, 훈련 캠프 성과에 따라 정식 로스터·투웨이 계약으로 전환될 수 있는 '입장권'입니다.
주목할 점은 그가 KBL 20억 원 계약 제안을 거절하고 NBA를 택했다는 사실과, 2026 나고야 아시안게임 결승 일본전에서 27점 18리바운드로 12년 만의 금메달을 이끌며 병역 문제까지 해결했다는 점입니다.
더 뭉클한 것은 그의 가족사입니다. 어머니 성정아는 1990 베이징 아시안게임 금메달·1984 LA 올림픽 은메달의 여자농구 레전드 센터이며, 아버지 이윤환은 NBA 센터 하승진을 길러낸 삼일고 농구부 감독입니다. 한국 스포츠 사상 최초의 ‘모자(母子) 아시안게임 금메달’이 이렇게 완성됐습니다.
1. 이현중은 누구인가 - 202cm 슈터의 궤적
이현중은 2000년 10월 23일생, 신장 202cm의 스몰포워드 겸 슈팅가드입니다. 삼일고를 졸업한 뒤 곧바로 미국으로 건너가 NCAA 디비전1 데이비슨(Davidson) 대학에 진학하는 이례적 진로를 택했습니다.
<목차>
1-1. 데이비슨대에서 증명한 슈팅력
대학 2학년 시즌 그는 야투율 50.8%, 3점슛 성공률 44.2%, 자유투 성공률 90.0%라는 이른바 ‘50-40-90 클럽’급 지표를 기록했습니다. NBA에서도 스테판 커리·래리 버드 등 극소수만 달성한 슈팅 삼박자로, 스카우트들 사이에서 이현중이 본격적으로 회자되기 시작한 시점입니다.
1-2. G리그·B리그를 거친 프로 이력
- NBA G리그: 산타크루즈 워리어스(골든스테이트 산하), 립시티 리믹스(포틀랜드 산하) 등에서 로테이션 자원으로 뛰며 평균 5.5점 4.2리바운드 1.7어시스트를 기록.
- 일본 B리그: 나가사키 벨카 소속으로 안정적인 출전 시간을 확보하며 실전 감각 유지.
- NBA 서머리그: 2026 시즌 서머리그에서 다득점 경기를 다수 기록하며 스카우트들의 재조명을 받음.

2. 왜 20억을 거절하고 NBA를 택했나
2-1. KBL 최고 대우 대신 비보장 계약
KBL 다수 구단이 그에게 연봉 20억 원 규모의 계약을 제안했다는 사실은 국내 스포츠계에 큰 파장을 일으켰습니다. 하지만 이현중은 이를 정중히 거절하고 최저 연봉 수준의 NBA 비보장 계약을 택했습니다. 본인의 표현에 따르면 “지금 도전하지 않으면 평생 후회할 것 같아서”라는 이유였습니다.
2-2. Exhibit 10 계약이란 무엇인가
Exhibit 10은 NBA 훈련 캠프에 초대된 선수와 구단이 맺는 1년 비보장 최저 연봉 계약입니다. 계약금은 최대 약 7만 5,000달러(약 1억 원)의 훈련 보너스가 포함될 수 있으며, 훈련 캠프에서 방출되면 산하 G리그 팀에서 최소 60일 이상 뛰어야 이 보너스가 지급됩니다.
2-3. 계약 유형별 비교표
| 계약 유형 | 보장 여부 | 연봉 규모 | NBA 출전 |
|---|---|---|---|
| Exhibit 10 | 비보장 | 최저 + 보너스(약 1억) | 캠프 후 대부분 G리그행 |
| 투웨이(Two-Way) | 부분 보장 | 약 55만 달러 | 최대 50경기 출전 가능 |
| 정식 로스터 | 전액 보장 | 약 120만 달러 이상 | 시즌 전 경기 가능 |
| KBL 국내 계약(참고) | 전액 보장 | 최대 20억 원 제안 | KBL 정규시즌 |
이현중의 목표는 캠프에서 인상적인 경기력을 보여 투웨이 계약으로의 승격입니다. 성사되면 NBA 정규 로스터의 문턱을 밟는 한국인 3번째 NBA 선수(하승진·이현중, 그 사이 여준석 도전 등)가 됩니다.
3. 나고야 아시안게임 - 인생 최고의 무대
3-1. 결승 일본전 27점 18리바운드의 원맨쇼
2026년 9월 20일 나고야에서 열린 아시안게임 남자농구 결승전. 하필 개최국 일본과의 결승 최초 한일전이었습니다. 이현중은 이 한 경기에서 27점 18리바운드의 더블더블을 폭발시키며 67-57 승리를 이끌었습니다.
한국 남자농구가 아시안게임 정상에 오른 것은 2014 인천 대회 이후 12년 만이며, 통산 5번째 금메달이었습니다.
3-2. 병역 문제 해결의 의미
아시안게임 금메달로 이현중은 병역법상 예술체육요원 편입 자격을 얻었습니다. NBA 도전을 이어가며 군 복무 공백 없이 해외 경력을 유지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만약 병역 문제가 남아 있었다면 훈련 캠프 참가 자체가 시간표에 걸릴 뻔했습니다.

4. 농구 가족 3대 - 유전자와 환경의 결정체
이현중의 성장 배경은 그 자체로 한국 스포츠사의 한 페이지입니다. 부모 모두 농구인이고, 아버지가 지도한 삼일고 출신들이 KBL·NBA를 누비고 있습니다.
4-1. 어머니 성정아 - 여자농구 레전드 센터
- 포지션·신장: 센터, 190cm.
- 1984 LA 올림픽: 여자농구 은메달 획득의 주역. 한국 여자농구 역대 최고 성적.
- 1990 베이징 아시안게임: 금메달.
- 현재는 여자프로농구(WKBL) 이사로 후배 육성에 관여하고 있습니다.
4-2. 아버지 이윤환 - 하승진을 길러낸 명감독
- 선수 이력: 실업 농구 선수 출신.
- 지도자 이력: 명문 삼일고 농구부 감독으로, NBA 진출자 하승진을 비롯해 다수의 프로 선수를 배출.
- 이현중 역시 아버지가 지도하는 삼일고를 거쳐 미국 진출을 결심.
4-3. 한국 스포츠 최초 ‘모자 아시안게임 금메달’
어머니 성정아(1990 베이징)와 아들 이현중(2026 나고야)이 나란히 아시안게임 금메달을 획득함으로써, 한국 스포츠 역사상 최초로 어머니와 아들이 대를 이어 아시안게임 정상에 오른 사례가 만들어졌습니다. 무려 36년의 시간 간격을 뛰어넘은 대물림입니다.

5. NBA 도전이 한국 농구에 갖는 의미
5-1. 하승진 이후 22년 만의 재도전
한국인 NBA 정식 로스터 선수는 2004년 드래프트 2라운드 46번으로 지명된 하승진(포틀랜드 트레일블레이저스)이 유일합니다. 공교롭게도 이현중이 계약한 팀 또한 포틀랜드 트레일블레이저스입니다. 정식 로스터 승격이 이뤄지면 22년 만의 한국인 NBA 선수가 탄생하게 됩니다.
5-2. 슈터 특화형이라는 강점
현대 NBA는 ‘3-and-D’(3점슛과 수비를 모두 갖춘 자원)가 절대적으로 부족합니다. 이현중은 신장 202cm에 대학 시절 3점슛 성공률 44.2%를 기록한 슈터라는 점에서, NBA가 가장 갈망하는 유형에 부합합니다. 다만 수비 스피드와 몸싸움 대응력은 캠프 기간 동안 증명해야 할 과제입니다.
5-3. 한국 유소년 농구에 미치는 영향
이현중의 도전은 단순한 개인 프로젝트를 넘어, 성장기 유소년들에게 ‘NBA도 가능하다’는 실증적 롤모델을 제시합니다. KBL 편중 진로에서 벗어나 NCAA·B리그·G리그 등 다층적 커리어 루트가 열렸다는 것이 그 자체로 유의미한 변화입니다.
자주 묻는 질문(FAQ)
Q1. 이현중은 지금 정식 NBA 선수인가요?
아직 정식 로스터는 아닙니다. 포틀랜드 트레일블레이저스와 Exhibit 10 비보장 계약을 맺고 훈련 캠프에 참가한 상태이며, 캠프 성과에 따라 투웨이 계약이나 정식 로스터로 승격될 수 있습니다. 방출되더라도 산하 G리그(립시티 리믹스)에서 계속 뛸 가능성이 높습니다.
Q2. 왜 20억 원 KBL 계약을 거절했나요?
본인이 밝힌 이유는 “지금 도전하지 않으면 평생 후회할 것 같다”는 것이었습니다. 아시안게임 금메달로 병역 문제까지 해결된 만큼, 이번이 NBA에 도전할 수 있는 커리어 마지막 골든타임이라 판단한 것으로 해석됩니다.
Q3. 어머니 성정아는 어떤 선수였나요?
1984 LA 올림픽 여자농구 은메달과 1990 베이징 아시안게임 금메달의 주역인 190cm 센터입니다. 1980년대 한국 여자농구의 황금기를 이끈 대표적 레전드로, 현재는 WKBL 이사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Q4. 아버지 이윤환 감독은 어떤 선수를 지도했나요?
삼일고 농구부 감독으로 NBA 센터 하승진을 비롯해 다수의 KBL 스타 선수들을 길러냈습니다. 이현중 역시 삼일고를 거쳐 미국 데이비슨대로 진학했습니다.
Q5. 이현중 NBA 경기는 어디서 볼 수 있나요?
정식 로스터 승격 시 국내 SPOTV NOW·쿠팡플레이 등 NBA 중계권 보유 플랫폼에서 시청할 수 있습니다. G리그 경기의 경우 NBA 공식 앱(NBA App) 또는 G League 공식 채널을 통해 시청 가능합니다.
마치며
이현중의 NBA 도전은 개인의 꿈을 넘어, 한국 스포츠 3대(代)에 걸친 유산이 세계 무대와 만나는 서사입니다. 20억을 거절하고 비보장 계약을 택한 결정은 결과와 무관하게 이미 후배들에게 큰 이정표가 됐습니다.
포틀랜드에서의 매 훈련이 곧 하승진 이후 22년의 공백을 메우는 시간입니다. 이 글이 도움이 되셨다면 즐겨찾기 후, 이현중 선수에게 보내고 싶은 응원 메시지를 댓글로 남겨주세요.